2009년 11월 16일
한심한 논쟁글의 유형들
■ 머릿글
이오공감이 이오지마 소리를 듣는 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뭐 하나 떴다 하면 불나는 것도 (아니, 사실 뭐 그래서 읽는 거긴 하지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의 미수다 루저 발언 논란은 물론이고, 어제오늘자로 또 살짝 炎上한 오타쿠 탄압(?)운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슬쩍슬쩍 읽곤 하는데... 읽다 보면 아 참 딱부러지게 썼네, 하는 글도 있는 반면 대체 이런 게 왜 끼어서 노이즈로 작용하나 싶을 정도로 읽으면서 한숨만 나오는 글도 있다.
후자의, 한숨만 나오는 글들은 솔직히, 그 글들이 언급한 것들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 낭비인 경우가 태반이다. 무엇을 두고 갑론을박해야하는지 핀트는 어긋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 돋아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대응하느라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진흙탕 직행으로 악셀만 밟게 된다. 글을 써서 설득과 이해를 도모하는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다. 이런 건 건설적인 논의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이야기해도 건설적이기는 꽤나 힘든 노릇인 것을 이렇게까지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원망심을 느끼는 건 어찌보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여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논쟁거리에 대해 뻔히 나오는 한심한 소리들의 유형을 좀 몇개 들어서, 속된말로 '좀 까보고자' 한다. 내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오늘은 가장 눈에 띄고 큰 한숨이 나오는 몇 가지를 꼽아보자.
■ 1. 인신공격의 부당사용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한다고 하면서, 사실 반박하는건 '상대방의 주장' 이 아니라 '상대방' 그 자체인 경우. 상대방을 부정함으로서 그 주장의 가치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들이다. 논의의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인신공격을 당하는 일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이걸 그 개인의 주장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근거로 쓰이는 것은 건전하지도 못하고 품위도 없다.
만약 이도경씨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파헤쳐 공개하고 퍼뜨린 사람들은 범법자이며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치자. (실제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여기서 이도경씨의 주장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반박하는 것은 잘못된, 건전하지 못한 글이다.
-> 그 사람들을 경찰에 고발하고 처벌받게 해야 한다는 당신의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다. 키로 사람을 판단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남의 잘못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나? (말투 등은 다르게 나타날수 있겠지만, 그 밥이 그 밥일 것이다)
'이도경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다면, 그 어떤 사람들이 범법자가 아니라던가, 처벌받을 일은 아니라던가 등등 하여간 '주장'을 무너뜨려야 정상이다. 그걸 무너뜨릴 수 없다면 당신이 이도경씨를 어떻게 생각하건 저 주장은 받아들여야 하는 게 되는 것이다. 하긴, 애당초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장을 반박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인신공격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왕왕 있긴 하겠다.
이유를 들어 결론이 어떤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이 되는 것까지 포함한 '모든 인신공격'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여기서는 이유로서 들 수 없는 인신공격을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짓은 한심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 2. 피장파장을 이용한 부당한 합리화
이것도 상대방의 주장을 까는 글에서 아주 쉽게, 빈번히 등장하곤 한다. 수준이 좀 더 낮은 부류 (초딩 말싸움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수 있다는 게 이 패턴의 특징이다!) 의 문제라서 그런지 글 자체보단 리플에서 더 많이 보이는 편. 어떤 주장이 잘못됐음을 반박하면서, 역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근거가 아니라 상대방의 전력이나 행동특징이 상대방의 주장과 모순됨을 보임으로서 까내리려는 시도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서 '아빠는 담배 피우면서 왜 나보곤 피지 말라고 하는건데요?' 를 들 수 있겠다.
어떤 행동이 모범직이므로 그것을 함이 마땅하다고 권유하는 주장에서, 주장하는 사람이 그 행동을 솔선수범함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는 일견 그럴싸한 태도로 보인다. 하지만, 상기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들(딸?)의 저 논박은 결국 아무런 효용성이 없다! 여튼 저기서 자녀의 반발은 '아빠'에게 3초 침묵 효과를 부여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으므로) 로 구성된 주장 자체에는 아무런 대응이 되지 못한다. 어찌됐건 담배를 피울 정당성은 전혀 획득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글이나 리플을 질러놓고 마치 자신의 주장이 상대방 주장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렸다고 정신승리에 도취하는 부류가 있다! 대체가 원체부터가 논리적인 구조가 박살나있어서, 에너지를 낭비해서 대응해주려고 해도 답이 안 나온다!
■ 3. 논리를 연민으로 굴복시키려는 시도
요약하면 결국 '당신이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러면 안됩니다' 가 되는 글들이다. 물론 이렇게 줄여지는 모든 경우가, Pity over logic의 문제 케이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온두라스에 부당하게 구금되어 있는 한지수씨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글에서 한지수씨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기술하는 것은 그러한 처지가 부당하게 강요되고 있다는 서술과 맞물려서 주장과 관련된 근거로서 충분히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맞물림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연민만 공감받고자 호소하는 글은, 아무리 애절하게 썼어도 단칼에 쓰레기로 취급해야 옳다. 2PM 박재범 사태 당시, '당신들의 이런 글에 박재범군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하시는 소리인가요?' 운운으로 달린 옹호반응들이 여기에 속한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난 이 박재범-2PM 사태에 대한 어떤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님을 미리 못박아둔다.)
상기 예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잘 공감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리라 생각되기에 그나마 뻔하게 읽히는 경우이지만, 비교적 더 많은 사람에게, 이성과 논리를 overwhelm해버리기에 충분한 연민을 유발하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경우가 더 악질적이다! 집단광기 유발과 사실 별반 다를 것이 없다.
■ 4. 집단과 군중에의 소속욕구나 허영심을 이용
군중을 방패로 이용하는 패턴이다. 군중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소외를 기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전제하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유형이다. 화자의 주장의 정당성이 전혀 확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의 세 가지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삼천포로 빠뜨리는데는 선수다. 물론 삼천포에서의 논의따위 전혀 필요없는 불모한 행위일 뿐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는 말을 하다니, 정상적인 한국인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전혀 근거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자로 하여금, 국기에 대한 맹세의 존속을 당연시하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집단에 속하는 조건처럼 연출한다.
좀 더 소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집단을 내세우면 더 악질적으로 변한다. "제대로 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ㄹㄹㅇ프로그램의 보도가 엉망이라는 건 당연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소속욕구뿐만 아니라 허영심리까지 자극한다. 전혀 맥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장에 대해 이미 비판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거나 경계심 없이 읽는 경우, 집단에의 소속을 당연히 수용하고 있는 개인의 경우에겐 공연히 강한 유인력을 발휘하는 탓에, 질이 나쁘기로는 위의 것들보다 더 심하다.
■ 5. 무지를 도리어 근거로 삼는 경우
창조론떡밥을 상대하다 보면 정말 피곤할 정도로 많이 발견되는 유형이다.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지지해줄 수 없는 어떤 사실에 대한 '무지'를 도리어 이유로 어떤 사실을 확립하려고 시도한다. 상식적으로 굉장히 말이 안 되는 논리임에도, 유독 종교나 초자연에 대한 소재가 되면 1순위로 즐겨 쓰이는 패턴이 되고 만다. 이런 패턴을 무진장 많이 상대한 리처드 도킨스 씨는 이것 하나로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신'의 한 챕터를 할당했을 정도다!
"어느 누구도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사실 반대로 바꿔도 저질이긴 매한가지다.
"어느 누구도 신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지간히도 개판이다. 어떠한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증명하지 못했다 = 알아내지 못했다) 는 사실은 어떤 사실도 지지해주지 않는다. 어떤 시도가 실패했음을 지칭할 뿐이다. 범법자의 검사가 피고의 유죄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그는 무죄다, 라는 주장은 변호사가 피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그는 유죄다, 라는 논리와 거의 동등하게 무력하다. (물론 현대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으니 전자만이 채용되고 후자는 부정되어 무죄 판결이 나오지만, 이것은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닌 아닌 무고자의 보호를 우선하기 위해 합의가 작용한 경우다)
■ 마무리
이러한 넌덜머리나는 패턴은 사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노이즈다. 어떠한 이슈에 대한 여러 시각을 살펴보고 주장들을 들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훼방꾼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진지한 사람들이 이런 불모한 시도들에 휘말려 에너지를 낭비하고야 만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가 되어 낭비할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정말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 by | 2009/11/16 14:26 | Disputed | 트랙백 | 덧글(1)

적어도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쟈코모 단테가 쟝-리코, 죠제-헨리에타조에게 있어서의 종결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결말이 어찌 날 지는 미지수. 쟈코모 단테에까지 이르른 두 형제를 보면... 평소와 별로 다를 것은 없어보이는 쟝에 비해서, 죠제의 변화는 꽤나 격렬하게 비춰지는 편.
오히려 쟝 쪽이 뭔가 생각한 눈치로, 헨리에타를 정비 직후라는 이유로 후방 지원으로 뺀 것이 뭔가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정많은 동생이 헨리에타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생각이 있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그려진 저 한컷의 뜸은 충분히 의도를 의심해봄직한 상황. 정작 죠제가 헨리에타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변했다는 사실까진 주변머리가 안 돌아간 눈치입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숨겨진 마음씀씀이를 구사할 여유가 있는 거라면, 최소한 쟝은 본래의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소리겠죠. 형만한 아우가 없나... 죠제의 내면적인 맹목과는 정반대로 와닿는 장면.
1기생의 수명은 분명 꽤나 아슬아슬한 것 같고, 지난 권에서부터 이상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지워진 기억의 재부상까지 나와서 플래그를 한껏 세우는 중. 이제껏 헨리에타 본인의 과거에 대해서는 1권에서의 간략한 사건언급밖에 없었는데, 권초의 멘테넌스 과정에서 헨리에타가 겪는 회상을 빌어 '그 사건'을 그려놓았습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쟝과 죠제의 성격 차이입니다. 우선 쟝은 리코를 철저하게 '내 칼' 취급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죠제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내적성장이 능력치에 반영됐는지 전투에서도 완전 주인공보정. 로켓을 차내고 유탄을 빗겨내고 먼치킨... 이었는데, 결국 자신의 제1목표는 베아트리체의 희생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히르샤는 그저 트리에라의 무사귀환에 안도할 뿐인건지, 아니면 베아트리체의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의중이 불명한데, 이게 어른으로서의 감춤인지 아니면 원체 없어서 안 드러나는건지는 분간이 안 갑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히르샤는 참 순수(..?)한 어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트리에라는 새삼 자신이 갈 길에 계속 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질거라는 걸 깨닫는 눈치.

꽃미남_중위를_노리는_여하사의_오렌지_눈빛.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