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논쟁글의 유형들

■ 머릿글

   이오공감이 이오지마 소리를 듣는 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뭐 하나 떴다 하면 불나는 것도 (아니, 사실 뭐 그래서 읽는 거긴 하지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의 미수다 루저 발언 논란은 물론이고, 어제오늘자로 또 살짝 炎上한 오타쿠 탄압(?)운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슬쩍슬쩍 읽곤 하는데... 읽다 보면 아 참 딱부러지게 썼네, 하는 글도 있는 반면 대체 이런 게 왜 끼어서 노이즈로 작용하나 싶을 정도로 읽으면서 한숨만 나오는 글도 있다.

   후자의, 한숨만 나오는 글들은 솔직히, 그 글들이 언급한 것들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 낭비인 경우가 태반이다. 무엇을 두고 갑론을박해야하는지 핀트는 어긋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 돋아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대응하느라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진흙탕 직행으로 악셀만 밟게 된다. 글을 써서 설득과 이해를 도모하는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다. 이런 건 건설적인 논의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이야기해도 건설적이기는 꽤나 힘든 노릇인 것을 이렇게까지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원망심을 느끼는 건 어찌보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여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논쟁거리에 대해 뻔히 나오는 한심한 소리들의 유형을 좀 몇개 들어서, 속된말로 '좀 까보고자' 한다. 내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오늘은 가장 눈에 띄고 큰 한숨이 나오는 몇 가지를 꼽아보자.




■ 1. 인신공격의 부당사용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한다고 하면서, 사실 반박하는건 '상대방의 주장' 이 아니라 '상대방' 그 자체인 경우. 상대방을 부정함으로서 그 주장의 가치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들이다. 논의의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인신공격을 당하는 일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이걸 그 개인의 주장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근거로 쓰이는 것은 건전하지도 못하고 품위도 없다.

  만약 이도경씨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파헤쳐 공개하고 퍼뜨린 사람들은 범법자이며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치자. (실제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여기서 이도경씨의 주장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반박하는 것은 잘못된, 건전하지 못한 글이다.

  -> 그 사람들을 경찰에 고발하고 처벌받게 해야 한다는 당신의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다. 키로 사람을 판단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남의 잘못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나? (말투 등은 다르게 나타날수 있겠지만, 그 밥이 그 밥일 것이다)

  '이도경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다면, 그 어떤 사람들이 범법자가 아니라던가, 처벌받을 일은 아니라던가 등등 하여간 '주장'을 무너뜨려야 정상이다. 그걸 무너뜨릴 수 없다면 당신이 이도경씨를 어떻게 생각하건 저 주장은 받아들여야 하는 게 되는 것이다. 하긴, 애당초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장을 반박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인신공격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왕왕 있긴 하겠다.

  이유를 들어 결론이 어떤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이 되는 것까지 포함한 '모든 인신공격'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여기서는 이유로서 들 수 없는 인신공격을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짓은 한심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 2. 피장파장을 이용한 부당한 합리화

  이것도 상대방의 주장을 까는 글에서 아주 쉽게, 빈번히 등장하곤 한다. 수준이 좀 더 낮은 부류 (초딩 말싸움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수 있다는 게 이 패턴의 특징이다!) 의 문제라서 그런지 글 자체보단 리플에서 더 많이 보이는 편. 어떤 주장이 잘못됐음을 반박하면서, 역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근거가 아니라 상대방의 전력이나 행동특징이 상대방의 주장과 모순됨을 보임으로서 까내리려는 시도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서 '아빠는 담배 피우면서 왜 나보곤 피지 말라고 하는건데요?' 를 들 수 있겠다.

  어떤 행동이 모범직이므로 그것을 함이 마땅하다고 권유하는 주장에서, 주장하는 사람이 그 행동을 솔선수범함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는 일견 그럴싸한 태도로 보인다. 하지만, 상기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들(딸?)의 저 논박은 결국 아무런 효용성이 없다! 여튼 저기서 자녀의 반발은 '아빠'에게 3초 침묵 효과를 부여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으므로) 로 구성된 주장 자체에는 아무런 대응이 되지 못한다. 어찌됐건 담배를 피울 정당성은 전혀 획득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글이나 리플을 질러놓고 마치 자신의 주장이 상대방 주장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렸다고 정신승리에 도취하는 부류가 있다! 대체가 원체부터가 논리적인 구조가 박살나있어서, 에너지를 낭비해서 대응해주려고 해도 답이 안 나온다!







■ 3. 논리를 연민으로 굴복시키려는 시도

  요약하면 결국 '당신이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러면 안됩니다' 가 되는 글들이다. 물론 이렇게 줄여지는 모든 경우가, Pity over logic의 문제 케이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온두라스에 부당하게 구금되어 있는 한지수씨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글에서 한지수씨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기술하는 것은 그러한 처지가 부당하게 강요되고 있다는 서술과 맞물려서 주장과 관련된 근거로서 충분히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맞물림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연민만 공감받고자 호소하는 글은, 아무리 애절하게 썼어도 단칼에 쓰레기로 취급해야 옳다. 2PM 박재범 사태 당시, '당신들의 이런 글에 박재범군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하시는 소리인가요?' 운운으로 달린 옹호반응들이 여기에 속한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난 이 박재범-2PM 사태에 대한 어떤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님을 미리 못박아둔다.)

  상기 예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잘 공감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리라 생각되기에 그나마 뻔하게 읽히는 경우이지만, 비교적 더 많은 사람에게, 이성과 논리를 overwhelm해버리기에 충분한 연민을 유발하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경우가 더 악질적이다! 집단광기 유발과 사실 별반 다를 것이 없다.




■ 4. 집단과 군중에의 소속욕구나 허영심을 이용

   군중을 방패로 이용하는 패턴이다. 군중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소외를 기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전제하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유형이다. 화자의 주장의 정당성이 전혀 확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의 세 가지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삼천포로 빠뜨리는데는 선수다. 물론 삼천포에서의 논의따위 전혀 필요없는 불모한 행위일 뿐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는 말을 하다니, 정상적인 한국인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전혀 근거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자로 하여금, 국기에 대한 맹세의 존속을 당연시하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집단에 속하는 조건처럼 연출한다.
 
   좀 더 소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집단을 내세우면 더 악질적으로 변한다. "제대로 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ㄹㄹㅇ프로그램의 보도가 엉망이라는 건 당연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소속욕구뿐만 아니라 허영심리까지 자극한다. 전혀 맥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장에 대해 이미 비판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거나 경계심 없이 읽는 경우, 집단에의 소속을 당연히 수용하고 있는 개인의 경우에겐 공연히 강한 유인력을 발휘하는 탓에, 질이 나쁘기로는 위의 것들보다 더 심하다.




■ 5. 무지를 도리어 근거로 삼는 경우

  창조론떡밥을 상대하다 보면 정말 피곤할 정도로 많이 발견되는 유형이다.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지지해줄 수 없는 어떤 사실에 대한 '무지'를 도리어 이유로 어떤 사실을 확립하려고 시도한다. 상식적으로 굉장히 말이 안 되는 논리임에도, 유독 종교나 초자연에 대한 소재가 되면 1순위로 즐겨 쓰이는 패턴이 되고 만다. 이런 패턴을 무진장 많이 상대한 리처드 도킨스 씨는 이것 하나로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신'의 한 챕터를 할당했을 정도다!

  "어느 누구도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사실 반대로 바꿔도 저질이긴 매한가지다.

  "어느 누구도 신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지간히도 개판이다. 어떠한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증명하지 못했다 = 알아내지 못했다) 는 사실은 어떤 사실도 지지해주지 않는다. 어떤 시도가 실패했음을 지칭할 뿐이다. 범법자의 검사가 피고의 유죄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그는 무죄다, 라는 주장은 변호사가 피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그는 유죄다, 라는 논리와 거의 동등하게 무력하다. (물론 현대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으니 전자만이 채용되고 후자는 부정되어 무죄 판결이 나오지만, 이것은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닌 아닌 무고자의 보호를 우선하기 위해 합의가 작용한 경우다)







■ 마무리

   이러한 넌덜머리나는 패턴은 사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노이즈다. 어떠한 이슈에 대한 여러 시각을 살펴보고 주장들을 들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훼방꾼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진지한 사람들이 이런 불모한 시도들에 휘말려 에너지를 낭비하고야 만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가 되어 낭비할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정말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by Enigma | 2009/11/16 14:26 | Disputed | 트랙백 | 덧글(1)

Gunslinger Girl 11



■ 7월 30일날 발매했다는데 지금까지 멍때리고 있다가 교보에서 인터넷 주문도 안되는 크리를 쳐맞고 결국 주문해놓고 1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사-_-태에 빠졌습니다 허이구 니미 안돼 이럴 순 없다. 결국은 주문해놓고 도저히 책이 올때까지 쑤셔올 좀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살짝 나쁜짓. 아 아니 책은 산다니까요...

이번에도 훌륭. 어차피 내가 빠돌이인데 깔리가 없지요(..) 아이다 유우가 처음 이 책 낼때의 그림체와 비교하면 참 감개무량하달까, 표현력 - 특히 인물의 표정을 동원해서 (11권은 좀 인상만 들입다 쓰는 장면이 많기는 했는데) 뭔가를 표현하는 수법이 참 인상적으로 굳어졌구나 싶습니다.


   페트라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톤이 확 변했었고, 여전히 페트라-산드로 콤비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날카로운 역할로 자리잡은 것 같은데 이번 권에선 별로 비중이 없네요. 2기생은 등장했지만 (2기생 숫자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아직은 1기 프라텟로의 저마다의 결말이 나기 전까지는 일단 보류인 모양.



■ 쟈코모 단테와 크로체 형제 - 광기에 대한, 복수의 광기

   적어도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쟈코모 단테가 쟝-리코, 죠제-헨리에타조에게 있어서의 종결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결말이 어찌 날 지는 미지수. 쟈코모 단테에까지 이르른 두 형제를 보면... 평소와 별로 다를 것은 없어보이는 쟝에 비해서, 죠제의 변화는 꽤나 격렬하게 비춰지는 편.

 
   이쯤하면 거의 딴 사람처럼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한데... 양동을 위한 정면돌입조 - 거의 반쯤 버림수에 가까운 - 에 2명의 의체를 선발할 당시 내뱉는 대사가, 보면 아주 이미 사람 속이 이미 퍼렇게 타고 있어서 눈에 뵈는게 없는 상황입니다. '그녀는 날 위해서 만든 시체의 수를 세고 있습니다...' 라며 씁쓸해한다던가, 헨리에타에게서 엔리카의 잔영을 바라보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군요(사실 이미 몇권 전부터 죠제가 헨리에타를 어떻게 여기느냐 하는 태도의 변화는 은연중에 표시되어 왔습니다만). 쟝의 복수는 기본적으로 엔리카를 위한 복수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하면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오히려 쟝 쪽이 뭔가 생각한 눈치로, 헨리에타를 정비 직후라는 이유로 후방 지원으로 뺀 것이 뭔가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정많은 동생이 헨리에타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생각이 있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그려진 저 한컷의 뜸은 충분히 의도를 의심해봄직한 상황. 정작 죠제가 헨리에타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변했다는 사실까진 주변머리가 안 돌아간 눈치입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숨겨진 마음씀씀이를 구사할 여유가 있는 거라면, 최소한 쟝은 본래의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소리겠죠. 형만한 아우가 없나... 죠제의 내면적인 맹목과는 정반대로 와닿는 장면.

   쟈코모 단테에게 있어 이번 종루점거는 꼭두각시를 내세운 위력정찰이나 전초전 쯤의 위치였을텐데,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 사회복지공사와 군경을 있는대로 골려주고 타격까지 입힌데다 의체에 대한 실험시도까지 성공시킨 셈이니 - 아마 다음권이나 다다음권쯤이 될 크로체 형제와의 본판 맞대결은 예상을 넘어서는 악랄함을 기대해봐도 되겠습니다. 아니 뭐 이런걸 다 기대하지 난 변태인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드는데 걍 무시.




■ 헨리에타의 기원 - 트라우마

   1기생의 수명은 분명 꽤나 아슬아슬한 것 같고, 지난 권에서부터 이상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지워진 기억의 재부상까지 나와서 플래그를 한껏 세우는 중. 이제껏 헨리에타 본인의 과거에 대해서는 1권에서의 간략한 사건언급밖에 없었는데, 권초의 멘테넌스 과정에서 헨리에타가 겪는 회상을 빌어 '그 사건'을 그려놓았습니다.

   벨리살리오에게 있어서 이 조치가 무슨 의미를 갖고있는지는 이 복선만 가지고는 사실 그냥 복선만 먼저 깔아놓은거라 잘 모르겠고, 최소한 헨리에타가 '지운 기억' 속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건 확실. (GIS 대원의 복면에 무의식적으로 반응) 이게 헨리에타의 수명문제가 임박했음을 그리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그게 헨리에타가 죽을 플래그인지는 판단하기에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최소한 크로체 형제의 복수에 결말이 지어질 때까지는 살아남을테고, 그 과정에서 이 공포기제가 어떻게 작용할지가 관건이 되지 않을런지.

   최소한 11권에서 이 문제로 인해 좀 안 나가는(..) 헨리에타는 꽤나 위태위태한 위치에 빠졌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조리 시야 밖으로 내던지면서, 이전과는 달리 '의체'로서의 역할을 헨리에타에게 맹렬하게 요구하고 있는 반면 정작 이 아가씨는 트라우마때문에 앞가림조차 안되고 있는 마당이니-_-;


   근데, 여기서 문제는 쟝과 죠제의 성격 차이입니다. 우선 쟝은 리코를 철저하게 '내 칼' 취급하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죠제는 비슷한 듯 보이지만, 죠제는 헨리에타에게 도구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같은 복수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게 다릅니다. 의체를 남들보다 비교적 사람으로 취급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달까. 만약 리코가 실패할 경우 쟝은 리코를 내버릴 테지만, 헨리에타가 실패하면 죠제는 헨리에타를 탓하고 원망하며 증오할 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헨리에타의 맹목적인 정체성은 완벽하게 부정될 테고... 그 뒤는 뭐어, 상상에 맡겨도 대충 느낌이 오죠.


   그 부분을 접어두고라도 헨리에타가 의체로서의 자신의 기원에 대해 자각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최소한 '오직 담당관인 죠제만이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맹목적인 소녀로서의 헨리에타'는 부정되고 마는 상황인데... 모로가도 헨리에타의 최후가 조만간에 그려진다면, 그리 싱거운 뒷맛이 남는 일은 없을 거라고 기대해도 되겠습니다. 복수의 결말이 어찌 날 지를 기대할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 셈.






■ 트리에라와 히르샤 - 존재의 이유, 행동의 이유

   헨리에타와 아주 대조적인 프라텟로가 바로 트리에라-히르샤 조. 10권에서 자신의 과거와 대면+격정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용-이라는 성장을 거쳐 독보적인 의체로 거듭난 트리에라가 존나 눈부시.. 우옷 눈부셔. 눈부셔서 히르샤의 소심함이 돋보이는게 거슬린다면 거슬릴까.




   내적성장이 능력치에 반영됐는지 전투에서도 완전 주인공보정. 로켓을 차내고 유탄을 빗겨내고 먼치킨... 이었는데, 결국 자신의 제1목표는 베아트리체의 희생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히르샤는 그저 트리에라의 무사귀환에 안도할 뿐인건지, 아니면 베아트리체의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의중이 불명한데, 이게 어른으로서의 감춤인지 아니면 원체 없어서 안 드러나는건지는 분간이 안 갑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히르샤는 참 순수(..?)한 어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트리에라는 새삼 자신이 갈 길에 계속 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질거라는 걸 깨닫는 눈치.

   이 프라텟로가 투샷으로 나오면 딱 느낌이 다른게... 담당관과 의체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대부분의 프라텟로가 두명이 나란히 서거나 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쪽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은 것과 꽤나 대조적. 10권에서의 일도 있고 해서, 히르샤-트리에라가 서로 바라보는 장면은 꽤나 느낌이 다릅니다. 그냥 보면 부녀같기도 하지만, 삐딱하게 보면 연인 (이라기엔 나이차가 너무 나려..나?)처럼 보이는게, 히르샤가 꽤나 애어른이라서 그럴지도--;





■ 단역들 : 또다른 두 1기생의 최후

   베아트리체 - 11권의 MVP단역. (단역이라기엔 다른 권에서 이름이 언급되거나, 짤막하게 등장한 적 자체는 있긴 하지만)


   이룬 일과, 그 일을 해낸 계기의 대조가 참 짖궃은 씁쓸함으로 남습니다. '그런 나 같은 겁쟁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게 네 역할이란다.' 라는, 그저 말많은 담당관의 그 한마디가 베아트리체의 전부를 규정짓는 결말. 기쁨도 두려움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그건 단 하나의 유일한 진리와 정답이었겠지요.

   결과적으로 그녀의 희생은 트리에라를 구해냈고, 트리에라의 삶의 목표도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 본인이 던진 '죽는 건 무섭나요?' 라던가, 크라에스에게 했던 '그건 즐거워?' 등의 질문은 질문인 채로 끝. 마지막 한마디 외침인 'トリエラ 伏せて!' 에, 어떤 종류건 감정이 있었을지 아닐지도 사실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러한 부류의 질문의 답을 손에 넣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단역이라서 그래요~ 라고 하면 그 뿐이기야 한데, 단순한 엑스트라의 퇴장으로 치부하기엔 이벤트의 의미가 묵직합니다. 특히 트리에라에겐 말이죠.

   실비아&키아라 - 1기생. 실비아는 존나 오 마이 취향(..). 이 반곱슬 긴머리가 무지무지 귀여웠는데 현관 클레이모어트랩이 가차없이 출연종료시켜버림 orz. 아...아니 시발 아무리 정면돌입조였다지만 시발....;;; 키아라는 직격은 면하고 생존. 엉엉 내 실비아 살려내라 나쁜자들아




■ 죠제 + 엔리카 vs 쟝 + 소피아 - 하나의 복수, 두 쌍의 남녀

  ◆ 엔리카
  
   이제껏 죠제의 복수의 이유가 되는 상징적 존재, 혹은 죠제를 감싸고 도는 족쇄의 망령으로서만 묘사되거나 등장했던 엔리카의 생전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밝혀졌습니다. 고위 관료 집안에서, 우수한 오라버니들 아래의 막내딸로 태어나 장래가 촉망받는 유능한 작은 아가씨였던 엔리카였지만, 바쁘기만 한 가족들 사이에서 외로운 처지를 불평해야만 하기도 하는 그의 처지를 신경써준 것은 죠제 뿐이었던 것. (사실, 크로체 부부는 몰라도 쟝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엔리카를 '자기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었던 거긴 합니다만..)

   죠제에게 있어 엔리카는 그저 여동생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지지해야 할 존재였다, 라는 배경에 (새삼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디테일을 더하는 대목입니다만 실상은 그냥 모에캐러 하나 더 추가했을 뿐인 것 같(엔리카 귀여워요 엔리카)군요. 아니 하긴 그것도 참 죠제의 복수동기에 설득력을 마구마구 부여하는 수단이긴 하네요.

   하지만 정작, 쟝이 먼저 사관학교에 입학을 이유로 떠넘겨받게 된 동생을 두고 자신도 군경찰에 입대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내용을 짚어보면 3년의 시간차를 두고 따라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쟝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되겠다는 장래희망의 관철이었을까요? 쟝의 입대 당시 동생을 돌보지 않는 형에 대한 힐난이 있었던 것을 보면, 결코 엔리카를 혼자 둘 거라는 사실을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군에 지원하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 소피아

   꽃미남_중위를_노리는_여하사의_오렌지_눈빛.JPG

   농담. 죠제에게 엔리카가 복수의 이유라면, 쟝의 복수의 이유가 되는 인물이 바로 약혼녀 소피아. 쟝이 소피아를 만나고, 어떤 관계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이어서 그려놨는데 허참, 영내커플이었습니까그려.

   두란테가 워낙에 참한 아낙(..)으로 나와있어서, 위에 엔리카 때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약혼자를 테러로 잃었으니 복수에 열이 오르는것도 이해할 만 하지 않습니까 나라도 당장 칼을 득득 갈겠네요 거 아니 심지어 약혼도 했다고 내가 홀아비라니 나를 홀아비로 만들다니 너임마 시발! .......


   여튼 두란테가 쟝을 함락(?)하던 당시의 대사인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와, 도리어 그런 자신의 형을 '예전부터 자기 본위였어' 라고 평하는 죠제의 대비는 형제가 서로간에 끼고 있는 오해를 엿보게 하는 부분 되겠습니다.

 
   사실 일찌감치 형제는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고, 그 すれ違い를 눈치챌 무렵에는 뭐가 늦어도 아마 늦었을겁니다. 대가가 뭐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형제가 담당하고 있는 의체가 그 依り代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군요. 헨리에타는 심지어 처음부터 위치가 그런 편이기도 했거니와... 반면 리코의 경우엔, 아마 좀 더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의 이야기.

   죠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만큼 엔리카를 위해주지 않는 형에게, 포기 뒤섞인 원망을 지우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만, (복수에 그저 덮여있을 뿐이고) 그건 일단 다음 권을 두고 보도록 하지요.




   여하튼 이번 권도 참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아이다 유우님. 다음권도 사드립니다 굽신굽신. 근데 연재속도 좀만 더 빨ㄹ...



   근데 그건 그렇고 빠심을 담아서 전력으로 감상글을 쓰긴 정말 간만인 것 같습니다 이거. 아 시발 이거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덮어버린 블로그 보면 당시에 참 무슨 힘이랑 머리로 저렇게 했나 싶다니까.

by Enigma | 2009/10/28 16:19 | Comic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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